[카나카오] 애정

2016. 10. 1. 20:33 from ENSTARS/NOVEL



 카오루가 턱을 괴었다. 멍하니 허공만 응시하는 시선이 몽롱했다. 눈 뜨고 꿈이라도 꾸는 표정이었다. 요 며칠 새에 카오루의 상태는 내내 저 모양이었다. 불러도 반응이 늦었고 학교에는 꼬박꼬박 등교. 물론 후자야 정상적인 학생이라면 당연한 것이겠다만 하카제 카오루에게 있어서는 이상의 증거였다. 기행이라기에는 조금 모자라고 일상이라기에는 과한 애매한 선 가운데에 서 있었다. 저렇게 몽롱하게 있다가 가끔 질색하는 표정으로 머리를 쿵쿵 박기도 했다. 제 정신이 아니네. 같은 반 클레스 메이트 세나 이즈미 군의 냉정한 평가였다. 칼이 떨어지는 평가와는 다르게 얼굴을 뜯어보는 시선은 집요했고 미약한 걱정이 스며있었다. 세나 뿐만 아니라 옆자리의 모리사와 역시 마찬가지였다. 카오루는 남자를 홀대하는 버릇이 있었으나 결국 타인에게 상냥했다. 크게 적을 만들지 않는 사람이었다. 천성적으로 그랬다. 알게 모르게 솜털 붙은 홀씨처럼 작은 걱정을 받고 있는 카오루의 몸 상태는 정상이었다. 정신 상태는, 글쎄. 사랑도 정신병의 일종이라면 단언컨대 비정상이었다. 


 사랑을 하고 있다. 타인이 듣기에는 이상할 일 하나 없는 일이었다. 세상 여자아이들의 절반과는 사귀고 있다며 살랑거리는 사람이기도 했고, 제멋대로 떠도는 사랑의 사자 따위의 별칭도 붙어있지 않은가. 그러나 사랑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의 감정을 인정하는 건 카오루에게 있어서 아주 중대한 일이었다. 인스턴트같은 손쉬운 애정을 주고받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그는 언제나 애매한 선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확실하고 딱 떨어지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애정도 진해질 기색이 보이면 피했고 무거워지려 하면 놓았다. 그런 그가 사랑을 인정한 것도 대단했건만, 대상 역시도 충격적인 사람이었다. 사랑을 하는 대상. 카오루의 기분을 하루에 열 두번도 더 바꾸게 만드는 사람. 알아차리기도 전에 너무 무거워진 나머지 놓기도 전에 그를 깔아뭉게 잠겨 버리게 한 사람. 카오루의 시선이 분수대로 향했다. 바다색 머리카락이 언뜻 보였다. 물을 인간으로 빚어낸 것처럼 비현실적인 사람. 수려하게 아름다운. 그래, 문제는 바로 저 사람이었다. 


 좋아해? 내가? 카나타 군을? 대략 오백 번은 넘게 중얼거린 물음을 다시 한 번 읊으며 카오루가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이미 한참 전에 힘겹게 인정한 답이 있건만 자꾸 다른 답을 찾고 싶어서 헤매게 되어버렸다. 누군가가 머릿속에서 ‘사실 아니야.’하고 속삭여주는 걸 듣고 싶었다. 부질없었지만. 만약 정말로 그런 속삭임이 들린다고 해도 불신할 게 뻔했다. 매일 학교에 오는 이유도, 해양생물부실에 꼭 발도장을 찍고 가는 것도, 창가에 하염없이 바라보는 사람이 있는 것도 모조리 단 하나의 정답에 도달하고 있기에.

 그래, 지금처럼. 


“카나타 군, 뭐 하고 있는 거야?” 

“앗, 카오루~.”


 오늘의 카나타는 분수대 안에서 물장구를 치지 않았다. 대신 그 끄트머리에 서서 둥근 테두리를 계속해서 걷고 있었다. 빙글빙글. 드문 일이었다. 말을 걸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겠지. 카오루가 속으로 간격을 측정했다. 사랑을 하게 되면서 거리를 재기 어려워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 새 너무 가까워져 있었다. 위험했다. 가까운 거리조차도 모자라게 느껴져서 한없이 더 다가가고 싶어졌다. 그게 아주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카나타는 카오루를 보며 웃었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미소였다. 사랑스럽고, 차분하다. 카오루가 좋아하는 바다와 닮아 있었다. 카나타의 중심에는 바다가 있고 해양생물이 있었다. 그게 가장 중요했기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소홀해졌다. 관심 없는 것에도 적당히 좋은 대꾸를 해 주는 카오루와는 달리 카나타는 애정을 가진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가 극명한 사람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순서에서 그 다음 순위를 줄세워 나열해 보아도 모리사와, 유성대, 같은 기인들... 카오루의 순위는 아마도 끝에서 세는 게 더 빠르겠지. 본인이 평가를 내리고 스스로 비참해지는 것도 지겨웠다. 


“카오루~? 무슨 일 있나요?”

“아니, 아무것도.”


 예쁘게 웃었다. 가시를 세우는 장미같은 어여쁜 미소였다. 어설프게 그 앞에 그어진 경계가 있었다. 더 이상 오지 마. 나한테 중요한 사람이 되지 마. 그러나 이미 마음 속 한구석에 진득하게 붙어버린 사랑에 녹아 선이 흐린 경계였다. 의무를 다해내지 못하는 선은 도리어 애처롭게 보이기 마련이었다. 지금의 카오루가 그랬다. 날렵하게 그려진 눈매에 박힌 회색 눈동자가 카나타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카오루, 오늘은 조금 이상하네요...? 어디 아픈 건가요?”

“그냥 느낌이 그런 거 아니야? 나는 평소랑 똑같은걸. 카나타 군이야 말로 오늘 기행을 하고 있으면서. 물놀이 안 해?”

“저도, 그저......”


 카나타가 제 발끝을 바라보았다. 무거운 바닷바람같은 침묵이 두껍게 깔렸다. 아, 이런 건 질색인데.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점령했는데도 불구하고 언제나처럼 한 걸음 물러서듯 웃을 수 없는 건, 조금 지쳐서일까. 아니면 빨리 잘라내는 것이 좋은 감정이라서일까. 판단할 수 없어서 카오루는 그저 카나타를 바라보았다. 미약한 절박과 한없이 녹아내리는 애정을 담아서, 물끄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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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