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츠마오] 오프

2016. 9. 26. 21:54 from ENSTARS/NOVEL




 학교를 졸업하고, 메이저 데뷔를 하면서 리츠는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애초에 knights의 활동만으로도 눈코뜰 새 없이 바빴다. 음악과 관련해서는 한없이 유능한 왕님과 모델로 꽤 두꺼운 입지를 가지고 있는 세나나 아라시 덕분에 함께 데뷔한 다른 아이돌들보다 손을 뻗는 범위가 넓기도 했다. 막내인 츠카사도 재벌가 도련님인 탓에 스오우 집안의 손이 닿은 회사가 조심스러운 제안을 넣어오는 경우도 있었고, 리츠부터도 먼저 데뷔해서 입지를 쌓아놓은 사쿠마 레이의 남동생이라는 것만으로도 관심을 받기 마련이었다. 형에 의한 관심이라는 건 좀 불만이었지만. 음악방송이며 예능에 그라비아에 광고까지 아이돌로써는 만족스러운 걸음을 걷는 중이었다. 


 그와 반대로, 이사라 마오는 대학 진학을 결심했다. 아이돌 활동과 겸업이었다. 오프가 있는 날에도 대학에 가야 한다고? 처음 소식을 듣고 리츠는 속으로 기함했다. 물론 Trickstar보다는 Knights가 더 바빴지만 그건 꼼꼼하게 따져서 그 정도고, 둘 다 만만찮게 잘 나가는 아이돌이었다. 오프도 틀림없이 손에 꼽을 정도일거고, 오프는 말 그대로 늘어지게 쉬어도 모자랄 터였다. 그런데 그 틈새에 과제를 하고 대학을 나가고 사람을 상대하겠다니. 그 말을 들으며 리츠는 마오의 뒤통수를 후려쳐서 대학에 대한 기억을 잃게 하는 게 정답이 아닐까 고민했다. 마오가 다치는 건 싫어서 그만뒀지만. 마오의 의지는 꽤나 확고했고, 결국 리츠는 열심히 하라며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사쿠마 리츠는 과거의 제 행동을 후회하고 있었다. 역시 그 때 바닥에 드러누워 징징대서라도 말려야 했어. 늦어도 한참 늦은 후회였다. 아침에 깨우는 목소리가 없어서 정오가 조금 지나서야 일어난 리츠는 제 옆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의 부재를 깨달았다. 연인의 따끈한 온기는 어디 가고 종이쪼가리 하나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리츠는 그것을 주워 읽어보았다. 아무래도 마오는 아침 일찍 일어나 옷을 챙겨입고 대학에 가 버린 모양이었다. 오늘까지 오프라고 하기는 했지만 자체휴강 해줄거라고 생각했었다. 내일부터 나 해외 콘서트 순회라고, 알고 있어? 마~군 너무해. 리츠의 뺨이 잔뜩 부었다. 평소라면 마오가 빠져나가는 것을 못 느낄 리츠가 아니었지만, 리츠에게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던데다가 잠든 시간도 너무 늦었었다. 나랑 같이 거의 밤 새놓고 나가다니 마~군은 초인이야? 리츠는 진심으로 묻고 싶었다.


 느릿하게 일어나 옷을 주워입고 씻고 먹으니 할 일이 없었다. 집이야 깨끗했고 저녁준비를 하기엔 일러도 너무 일렀다. 하루 종일 마오랑 노닥거릴 생각이었으니 나갈 약속따위도 없었다. 아니, 있었더라도 리츠의 체질 상 모조리 저녁에 몰려있었겠지. 이른 오후의 사쿠마 리츠는 느닷없는 한가함에 직격을 맞았다. 당황스러웠다. 


 TV 프로를 몇 개 돌려보고 스마트폰으로 유닛의 이름을 몇 번 검색해보다가 SNS를 몇 번 둘러본 리츠는 곧 소파 저쪽에 휴대전화를 던지는 것으로 항복신호를 올렸다. 피아노를 칠까 생각해봤지만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연습에서 손가락이 얼얼할 정도로 친 게 피아노고, 춤이었고, 노래였다. 하루쯤은 쉬고 싶었다. 


 뭐 하지. 침대를 뒹굴거리며 리츠가 고민했다. 커다란 베개를 품에 끌어안고 작게 눈을 깜박였다. 팬들이 보면 비명을 지를 정도로 사랑스러운 모양새였지만 봐주는 사람 하나 없었다. 마~군... 리츠가 다시 한 번 입을 비죽였다. 그리고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생각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예쁜 루비색 눈이 장난기로 반짝 빛났다. 


“마~군한테 찾아가 볼까~.”


 마오의 대학이 어디 있는지 알았다. 몰래 들어가는 방법도 알았다. 사실 그리 멀지도 않았다. 집을 정할 때 대학과 사무소의 거리를 따지며 같이 머리를 싸맸는데 어떻게 모를까. 마오의 놀란 얼굴을 생각하면 꽤나 해 볼만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심심했으니까. 집에 혼자 남겨져 있는 것도 싫었고. 그럼 결정♪ 리츠가 아주 곱게 웃었다. 



 *



 이사라 마오는 인기가 많았다. 우선 연예인이었지만 성실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일을 했다. 타인을 낮잡아보는 일도 없었고 공부도 성실히 했다. 이 정도면 싫어하는게 더 힘들 정도였다. 덕분에 학교에서도 마오는 상당히 바빴다. 쓰고 있던 검은 뿔테안경을 벗으며 마오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사실 마오는 과제만 제출하고 집에 돌아갈 생각이었다. 앞으로 한 달 이상 보지 못할 연인을 방치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마오가 너무 인기인이라는 점이었고, 또 너무 눈에 띈다는 점이었다. 학교에 들어온 순간 이사라 마오의 등교 소식이 퍼졌고, 같은 과의 지인들이 마오를 찾으러 온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이 정도면 리츠도 깼겠지. 당연히 깼을거야. 혹시 몰라 메모는 남겼는데 화내면 어쩌지? 마오가 머리를 부여잡고 고민에 빠졌다. 다음 수업이 있는 교실로 가기 위해 복도를 걷고 있었다. 주변에는 학생들이 가득했다. 전화라도 해볼까 싶었지만 아직 자고 있는 걸 깨우는 게 아닐까 하는 불확실과 화를 내고 있으면 어쩌나 싶은 걱정 탓에 제대로 전화를 걸지도 못하고 화면만 만지작거렸다. 누군가 뒤에서 어깨를 톡톡 쳤다. 소란한 틈새에서 보내오는 신호에 마오가 무심코 뒤돌아보았다. 곧장 붉은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얽히는 순간 곱게 휘는 눈이 어쩐지 매우 낯이 익었다. 상대가 작게 손을 흔들었다. 


“리츠?!”


 너무 낯익었다. 그걸 깨달은 마오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순식간에 시선이 쏠렸다. 모자를 눌러쓰고 안경까지 착용해서 중무장을 하고 있던 리츠가 낮게 혀를 찼다. 


“마~군. 변장까지 하고 몰래 들어온 의미가 사라졌잖아. 책임 져.”

“어, 미안? 아니, 그게. 진짜 리츠?”


 왜 여기에? 아직 시간이, 어라? 마오가 몇 번이고 창 밖을 살폈다. 아직 해가 화창했다. 꿈인지 생시인지, 눈만 껌벅이는 마오와 파문이 퍼지듯 소란이 퍼지는 학생들을 번갈아 본 리츠가 마오의 손을 낚아챘다. 사실 마오의 대학생활을 좀 보고 질투할 정도로 친하게 지내는 녀석은 있나 확인하고 싶었지만 다 틀렸다. 더 몰려오기 전에 도망치는 게 답인 것 같았다. 


“자, 그럼 남은 수업 마~군은 휴강~. 가자, 마~군.”

“우왓, 리츠 잠깐만. 당기지 마.”


 들쳐업고 싶은 걸 참는 거니까 투정부리지 말아 줘, 마~군? 리츠가 은밀하게 속삭였다. 마오의 얼굴이 순간 화끈 달아올랐다. 학생들의 사이를 피해서 능숙하게 길을 터 앞장서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리츠의 손길에 따라 걷고 걷다보니 어느 새 정문을 넘고 있었다. 마오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마오였다면 적어도 30분은 더 걸렸을 터였다. 


 정문을 넘어서 몇 발자국 걷자마자 리츠가 마오에게 엉겨왔다. 마~군. 나 방전~. 업어 줘, 챙겨 줘~. 순식간에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리츠를 보며 마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능숙하게 리츠를 안아 다독이며 마오가 하늘을 잠깐 보았다. 여전히 해가 떠 있었다. 리츠가 무리한 건 사실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어떻게 온 거야, 리츠?”

“마~군 보고싶어서. 내일부터 외국으로 떠날텐데, 나 혼자 두고 가니까 좋았어, 마~군?”


 새초롬하게 눈을 뜨고 밉지 않게 흘겨보는 건 어리광에 가까웠지만, 마오는 진심으로 당황해서 쩔쩔맸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변명하는 마오를 보며 리츠의 입가가 점점 올라갔다. 슬금슬금 기어올라가는 입가를 꾹 내리누르며 리츠가 마오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머리카락이 간질간질했다. 호흡이 닿자 바짝 굳는 몸의 살내음이 저와 같았다. 만족스러웠다. 


“집에 가자, 마~군.”


 속삭여지는 목소리가 상냥했다. 마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이 벌게져 시선을 저 멀리 피해두는 마오가 귀여워서, 리츠가 방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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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