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스스로가 부허하다고 느껴졌다. 졸업과 함께 찾아온 어떤 이유 탓에 마음 한 구석이 둥실거렸다. 그 탓에 도리어 하릴없이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카오루를 보며 소마는 경망스럽다며 열을 올렸었다. 그런 후배를 놀리는 것도 재미가 없어 그의 앞에서 얌전하게 굴기 시작한 것도 벌써 2주째였다. 그 사이 소마는 카오루가 뭘 잘못 먹거나 크게 탈이 나거나 정신이 나간 것이 분명하다며 케이토에게 열변을 토했다. 교실에 얌전히 앉아있던 카오루에게 미심쩍은 표정을 짓고 다가와 무슨 일이 있냐며 물어오던 케이토를 생각하며 카오루는 슬쩍 웃음을 물었다가, 시선을 내리깔며 아랫입술을 물었다. 건조한 공기에 피부가 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카나타 군이 싫어하는 겨울이었다.
카오루도 겨울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겨울 바다는 좋아했다. 추운 탓에 여자아이들도 집에서 나오지 않는 시기가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굳이 바깥으로 끌어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었기에 카오루는 홀로 다녔다. 겨울 바다는 혼자 구경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무도 없는 탓에 누구도 카오루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뺨이 차게 얼어붙을 때까지 카오루는 오래오래 겨울 바다를 보다가 들어오고는 했다.
카나타는 물장구를 칠 수 없어서 겨울을 싫어했다. 수영을 할 수 없는 그에게 실내수영장도 그다지 좋은 선택지가 아니어서, 분수대에서 물장구를 칠 수 없는 시기는 참으로 괴로운 시기였다. 온천은 어때? 2학년 어느 봄에 물었던 질문이었다. 뜨거운 물은 질색이니까요~. 카나타의 답변에 카오루는 수긍했다. 그는 언제나 찬 물을 좋아했다. 뜨거운 물은 익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며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카나타는 미묘한 곳에서 참 섬세한 사람이었으니 그 역시도 카나타답다고 생각하며 카오루는 납득했던 기억이 있었다.
카오루와 카나타의 관계는 오랫동안 평행선이었다. 카오루는 깊게 참견하고 싶지 않아 했고, 카나타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맞닿아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두 사람은 3년이라는 고교생활을 함께했다. 닿은 온기 사이에 피어난 애정이나 열기 따위는 무시하고 있었다. 카오루는 건조했고 카나타는 차가웠다. 그 사이에 따뜻한 것이 끼어 보았자 금방 식을 것이라고, 둘 다 내심 그리 취급했다. 어쩌면 그러기를 바란 것일지도 몰랐다.
그들이 간과한 것이 있다면, 그림자 깊은 곳에서 피어난 애정은 쉬이 꺾이지 않는 종류였다는 점이었다. 어느 순간 평행선을 걷는 것만으로는 만족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먼저 욕심을 품은 것은 누구였을까. 순서를 정하는 것은 부질없었다. 다만 좋아하게 되었다. 서로의 애정은 낯설기에 숨이 막혔다. 카오루는 물끄러미 카나타를 보았다. 카나타의 바다를 보았다. 감히 건조하게 마르기 싫어하는 카나타와 물에 잠길 수 있는 카오루 중 먼저 용기를 낸 것은 카오루였다. 그는 기꺼이 그의 바다에 몸을 실었다.
카나타는, 퍼드득 겁을 먹었다. 심해 속에 꼭꼭 숨어들었다. 태양의 열기에 이끌려 수면으로 살짝 올라와 땅에 발을 디뎌보기는 하였으나 기본적으로 신카이 카나타는 바다에 사는 해양생물이었다. 따뜻한 태양은 멀리 있어서, 그를 비춰주기는 하였으나 모두의 것이었다. 공평하게 주어지는 온기는 카나타를 기쁘게 하였다. 바람은 달랐다. 바짝 다가와 그를 감싸고 몸을 건조하게 만들었다. 카나타를 변하게 만들었다. 그건 몹시도 두려운 일이었다. 카나타는 꼬르륵 잠겨들었다.
신카이 카나타에게만 주는 애정은 낯설었다. 카오루는 이해했다. 저였어도 겁을 먹었을 터였다. 오롯하게 자기 자신에게만 주어지는 감정은 너무나 감미롭고 그만큼 위험해 보였다. 자신을 통째로 잡아먹어 다른 사람으로 만들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카오루는 인내하기로 했다. 겨울은 길고 건조했으며 카나타가 살기 힘든 계절이었으니. 성인이 되기 직전의 소년은, 의외라고 평할 지 모르겠으나, 기다리는 걸 잘 했다. 남에게 무언가 강요하는 것은 소년이 싫어하는 것 중 하나였다.
졸업하기 전까지만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 카오루는 시간을 요구하는 카나타에게 제한을 걸어주었다. 지금은 12월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카나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졸업 후에는 만나기도 쉽지 않았다. 카오루에게 더 긴 시간을 요구하는 것은 그에게도 가혹한 일이었다. 카오루와 카나타는 그렇게 헤어졌고, 그 뒤로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었다.
카나타가 카오루를 피했다. 카오루는 별 일 없는 듯 일상에 녹았고, 카나타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오래 곱씹어 감정을 소화시키고 고백으로 표현해낸 카오루와 모르는 척 하던 것을 갑작스럽게 눈앞에 들이밀어진 카나타는 처지가 달랐다. 카오루는 이해했다. 하카제, 카나타랑 무슨 일 있었나? 치아키가 한 번 물은 적 있었다. 응, 고백을 했어. 카오루는 주스를 쭉 빨며 대답했다. 옆에서 세나가 물을 잘못 삼켜 기침을 했다. 뭐?!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가 공기를 찢었다.
카나타의 대답은 늦었다. 생각보다는 빨랐다. 졸업식날 대답해 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그보다 이르면 뭐든 빠르지 않을까. 그 사이에 부장 공에게 무슨 짓을 했냐며 칼을 휘두른 소마가 있었고 카오루 군 무슨 짓을 했느냐며 저를 찔러대던 래이가 있었지만 카오루는 너그러이 모른 척 했다. 딱히 ‘무슨 짓’을 하지는 않았다. 도리어 카나타가 카오루에게 무슨 짓을 했지. 남자를 좋아하게 만들다니, 대단한 짓을 하지 않았던가. 물론 그렇기에 고백을 하기는 했지만 반하게 만든 카나타도 잘못이 있다며 카오루는 속으로 우겼다. 반한 사람이 진다고 했으니까.
카나타의 얼굴을 보는 것도 근 두 달만이었다. 카오루는 물끄러미 카나타를 살폈다. 하얀 얼굴, 조금 창백한 뺨.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며 복잡하지만 결정을 담은 섬세한 옥빛 눈동자까지도.
“저는, 무서워요.”
카나타는 느리게 입을 열었다.
“카오루랑 같이 있으면, 저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여기가 온천처럼 보글보글 끓어오르고, 해일이 오는 것처럼 감정이 변해요.”
카나타가 가슴께를 잠깐 매만지다가 손을 내렸다. 입을 달싹이며 고민하던 소년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래도 마지막에 이런 결론이 나온 것은 결국 카나타 역시도 카오루와 꼭 닮은 감정을 진주조개처럼 물고 있던 탓이었다. 한참 망설이던 카나타는 결국 붉은 진주에 사랑이라 이름을 붙였다. 대답을 예상하고 산호보다 곱게 빛나는 눈을 보며 카나타가 웃었다.
“다시 한 번 나를 좋아한다고 말해 주세요, 카오루.”
“좋아해, 카나타 군.”
좋아합니다. 기대와 불안이 비슷하게 뒤엉킨 색 연한 눈을 보며 카나타가 그 눈가에 키스했다. 눈가에 한 번, 이마에 한 번, 콧잔등에 두 번 쪽쪽 입맞췄다가 뺨에 키스하는 것으로 떨어졌다. 발갛게 달아오른 체온이 따끈따끈했다. 그도, 자신도.
“저도 좋아해요, 카오루.”
아주 많이. 속삭이는 목소리는 잔뜩 뜨거웠다.
'ENSTARS > NOVEL'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나카오] 열대야 (0) | 2017.02.02 |
---|---|
[리츠마오] 머리카락 (0) | 2017.01.02 |
[리츠마오] 홍월 (0) | 2016.12.28 |
[카나카오] 크리스마스 (0) | 2016.12.25 |
[리츠마오] 질투 (0) | 2016.1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