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중학생이었다. 그리고 소년은 고등학생이었다.
고작 일 년의 차이였지만 그 틈새는 어마어마했다. 중학교에 남은 소년은 그것을 뼈져리게 느끼고 있었다. 이미 초등학생과 중학생으로 갈라졌던 시기를 한 번 경험해보아 이번에는 넉넉하게 넘길 수 있지 않을까 간과했던 것이 우스울 정도였다. 어쩌면 다니고 있는 학교의 문제일지도 몰랐다. 평범한 일반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이사라와는 달리 사쿠마는 유메노사키 학원으로 진학했다. 아이돌 양성학교. 조금씩 쇠퇴하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그 명성만큼은 견고한 이름을 떠올리며 이사라는 창 밖을 내다보았다. 황량한 겨울 풍경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왔다. 이제 곧 졸업을 한다. 제 또래의 아이들은 고교 진학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이사라는 허리를 굽히고 책상에 뺨을 댔다. 차가운 책상에 정신이 좀 드는 기분이었다. 복잡한 감정을 담은 녹색 눈동자가 살짝 눈꺼풀 아래로 몸을 감췄다.
이사라는 단 한번도 아이돌을 꿈꾼 적 없었다. 객관적으로 춤도 노래도 일반인 치고는 수준급인 마오였기에 장기자랑에서는 환영받는 인사였고, 종종 텔레비전에서 보이는 반짝거리는 그 모습에 시선을 빼앗기기는 했어도 아이돌이라는 대단한 직업을 욕심낸 적은 없었다. 동생이 생긴 뒤로 관심에서 한 발자국 멀어지게 된 어린 소년은 사람들의 많은 시선은 받지 않는 직업을 얻어 적당히 돈을 벌며 살고 싶었다. 선생님이라던가, 비서, 의사도 좋았다. 남을 치료하거나 도와주는 직업은 적성에 맞을 것 같았기에 중학교에 진학한 뒤로는 쭉 고려하고 있던 직업이었다. 바로 작년까지만 해도 그랬다. 이사라가 눈을 떴다. 몸을 일으키고 다시 턱을 괴었다. 칠판 한 편에 써진 진학상담이라는 글씨가 진하게 눈에 새겨졌다.
사실 이사라는 사쿠마가 유메노사키에 진학할 것이라고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종종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유메노사키 아이돌의 모습에 깊게 집중한 적은 있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잠깐이었다. 노래도 잘 하는 사쿠마였기에 관심을 가져도 그러려니 싶었다. 그러던 작년의 이맘때 사쿠마는 이사라에게 통보했다. 유메노사키 학원에 갈 거야, 하고. 이미 합격통지서까지 받아온 그는 유메노사키 이외의 학교에는 아예 시험조차 보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사라는 당혹스러웠다. 아이돌? 그가 그런 꿈을 꾸고 있었다고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이사라는 살짝 자괴감을 느꼈다. 오랜 소꿉친구로서 그에 대해 모르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에 처음으로 금이 간 순간이었다. 그 작은 금으로 참 많은 것이 새어나갔다.
그 뒤로 사쿠마는 종종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었다. 이사라가 직접 그의 초대를 받아 무대 위의 모습을 보러 찾아간 적도 있었다. 처음으로 무대 위에 서 있던 사쿠마를 본 순간 이사라는 깨달았다. 그는 타고난 아이돌이었다. 시선을 휘어잡고 무대를 춤추며 다른 동료들과 함께 웃는 모습은 너무나도 낯선 얼굴이었다. 이사라는 제 바짓자락이 잔뜩 구겨지도록 움켜쥐었다. 몇 번이고 손으로 펴도 지워지지 않는 자국이 남을 정도로 단단히.
동시에 그 날 이사라는 사쿠마의 유메노사키 진학의 이유를 알게 됬다. 사쿠마의 무대 다음다음 정도에 등장했던 아이돌. 검은 머리카락, 붉은 눈동자. 사쿠마와 빼닮았으면서도 조금 더 위험하고 섹시한 분위기. 그의 이름은 레이였다. 이사라는 사쿠마 레이가 사쿠마 리츠의 형이라는 아주 기본적인 정보만을 알고 있었다. 얼굴을 본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다. 레이가 유메노사키의 유명인이라는 것도 몰랐다. 사쿠마는 레이를 따라 유메노사키에 진학했다. 이사라는 그것을 배웠다. 이사라는 사쿠마와 저 사이의 거리를 새삼 실감했다. 참 까마득해보이는 거리가 아득했다.
이대로 너와 나 사이는 조금씩 멀어져서, 어른이 되면 한 때의 친구로 남는 걸까? 중학교 3학년의 이사라는 내내 그 물음을 속에 품고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사쿠마는 이사라가 알고 있는 사쿠마로 돌아와 그의 무릎 위에서 어리광과 불평을 내뱉었지만, 그 입에서 단편적으로 흘러나오는 정보들조차 모조리 낯선 이야기였다. 드림패스, 팬서비스, 유닛, 작곡가, 리더, 셋쨩, 같은 유닛의 동료들. 모두 이사라와는 관계 없으면서도 사쿠마와는 깊은 관계가 있는 이야기였다. 두 사람이 살아가는 세계가 달라졌다는 증거였다. 이사라는 그것을 쓸쓸하다고 여겼다. 아득한 미래의 그 어느 순간까지도 영원히 제일 가까운 사람으로서 살아가리라 생각했는데 그 확신마저도 흘러나가 사라져버렸다. 남은 것은 지독한 쓴 맛 뿐이었다.
이사라는 회사원이나 선생님이 되려 했다. 가을부터 알아보던 학교도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일반계 고등학교였다. 평범한 삶. 곁에 사쿠마가 없는 삶. 이사라는 수긍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가 없는 세계에 살 각오를 다지는 데에는 꼬박 일 년이 걸렸다. 봄부터 겨울까지 사쿠마가 없는 미래를 그리기 위해 애를 썼다. 가까스로 사쿠마 없이도 살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을 세뇌시키고 납득시키는 데까지 네 개의 계절을 온전히 소모해야만 했다. 눈물과 우울함과 자괴로 젖은 밤이 수없이 많이 지나갔다.
사쿠마는 그것을 너무도 간단하게 망가뜨렸다. 마 군, 유메노사키에 올 거지? 저가 먼저 가져왔다며 진학시험 신청서를 손에 쥐어주며 웃는 사쿠마는 언제나처럼 사랑스러웠지만, 이사라는 화가 났다. 미래를 고민했던 과거도 우울했던 밤도 모두 그 말 아래서 가치를 잃었다. 이사라는 그에 분노했다. 너무도 당연하게 그가 사쿠마를 따라갈거라 판단해버리는 것도 싫었다.
이사라는 처음 사쿠마에게 화를 냈다. 사쿠마는 당혹에 젖어 어쩔 줄 몰라했다. 이사라가 화를 내는 이유도 잘 모르는 듯 보였다. 이사라도 그걸 알았다. 사실 저가 화를 내는 것이 나쁘다는 것도 알았다. 사쿠마는 그저 언제나처럼 이사라가 와 줄 것이라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 딴에는 배려하여 신청서를 가져왔겠지. 이사라 혼자 아이돌이 되는 미래에 대번 겁을 먹어 멀리한 것 뿐이었다. 사실 유메노사키에 진학해도 성인이 되었을 때 아이돌이 되지 않을 수도 있는데. 고려하지도 않은 미래로 길이 좁혀지는 게 무서웠고 그 길을 선택하는 이유가 오로지 사쿠마 하나 뿐이라는 점에서 스스로가 한심했다. 가장 문제는 사쿠마와 함께 있을 그 시간을 매력적으로 느끼고 있는 저 자신이었다. 그토록 고민하여 멀어지는 길을 납득했건만. 이사라는 제 자신이 싫어지기까지 했다. 그렇기에 몸을 돌렸다. 마 군! 뒤에서 부르는 사쿠마의 목소리에 녹아든 수많은 감정을 그는 읽었지만, 뒤돌아보지는 않았다. 나중에 보자, 리츠. 다만 그는 상냥했기에 한 마디의 여지를 남겼다. 사쿠마의 집에서 뛰쳐나온 이사라는 그대로 제 방에 틀어박혔다. 속에 응어리진 많은 것들이 눈물로 녹아 떨어졌다. 이사라는 저가 우는 이유조차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지만, 그냥 눈물이 나왔다. 서러워서 이불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울음을 삼켰다. 그림자 진 날이었다.
이사라는 그 뒤로도 며칠동안 사쿠마에게 연락을 끊었다. 사쿠마도 먼저 이사라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는 겁을 먹은 것 같았다. 이사라에게 미움받을까 극도로 행동을 조심하는 게 이사라 눈에 훤히 보였다. 그래서 미안했다. 먼저 사과하고 싶었건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또한 여전히 고민하고 있던 탓이 컸다. 이사라는 제 앞에 놓인 길을 응시했다. 그가 내내 당연히 그러리라 생각했던 평범한 길인지, 아니면 사쿠마를 따라 걸을 아이돌의 길인지. 전자는 평화로웠으나 사쿠마가 없었고 후자는 두려웠으나 사쿠마가 있었다. 이사라는 제 미래를 놓고 정해야 할 길을 이런 식으로 고민하는 것이 기가 찼다. 저가 얼마나 사쿠마를 좋아하는지만 수없이 깨닫은 날이었다.
그 날 새벽 사쿠마에게 먼저 연락이 왔다. 초대였다. 유메노사키 S1. 일반인도 관람할 수 있는 최고 드림패스에 사쿠마도 유닛의 이름을 걸고 참가하는 모양이었다. 꼭 와주었으면 좋겠다는 연락은 정중하고 조심스러웠다. 언제나처럼 느긋한 말투나 말을 대신하던 이모티콘은 없었다. 딱딱한 문자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이사라는 꼭 가겠다는 답장을 남겼다. 이사라는 이 드림패스가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마지막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직감했다. 소년이 눈을 감았다.
그 날은 눈이 왔다. 매우 추웠다. 이사라는 자켓과 목도리로 저를 둘둘 감고도 몸을 떨었다. 하얀 입김이 사방에 번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몹시 많았다. 이사라는 아이돌을 보러 온 팬들의 열기를 경외시하며 바라보았다. 신기하기도 했다. 저 중 몇은 사쿠마의 얼굴을 보기 위해 추운 날씨를 이기고 여기까지 왔다. 이사라는 뽀득하게 밟히는 눈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사쿠마가 참가하는 무대가 잘 보이는 의자에 앉아 몸을 움츠렸다. 발끝부터 얼고 있었다.
사쿠마의 유닛은 중간하고도 조금 뒤편에 차례가 배정되어 있었다. 이사라는 무덤덤하게 아이돌들의 무대를 응시했다. 인기 유닛과 그렇지 않은 유닛의 차이는 이사라도 명백하게 알 수 있었다. 팬들의 비명의 차이가 달랐다. 날씨가 험한 탓에 일반인들보다는 특정 유닛의 팬의 비율이 높았다. 인기 유닛은 그럴 이유가 있다고 이사라는 생각했다. 무대 수준이 달랐다. 노래도 춤도 이사라보다 못한 사람도 꽤 자주 눈에 띄었다. 마음 속으로 실소를 삼켰다. 제 자신을 너무 높게 치는 것 같아서 부끄럽기도 했다. 사쿠마 하나를 보러 왔으니 이사라는 내내 사쿠마만 무대에 서기를 기다렸다. 코며 귀가 얼얼했다. 이사라도 종종 무대를 즐기기도 했다. 이름을 아는 사람으로는 레이가 무대에 섰을 때, 이름을 모른는 사람으로는 이츠키나 히비키라는 이름의 사람이 무대에 섰을 때는 즐거웠다. 혹은 감탄했다. 대단한 사람들도 있구나. 그리 생각했다. 대단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격차를 그는 무대 밑에서 응시했다.
그리고 등장했다. 사쿠마의 모습은 보이는 순간 시선을 빼앗앗다. 사방에서 비명이 들렸다. 이사라는 사쿠마와 그의 유닛을 보러 온 팬들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쿠마는 무대 위에서 이사라를 보고 있었다. 대번 눈치챘다. 시선이 얽혔다. 붉은 눈동자가 조금 불안함을 담아 이사라를 보았다가, 곧 천천히 휘어졌다. 똑같이 불안함을 담고 있는 이사라를 위로하듯 다정한 시선이었다. 추위를 타는 이사라의 얼굴을 살짝 걱정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이사라는 어이가 없었다. 두껍지 않은 무대의상을 입고 눈까지 오는 무대 위에 서 있는게 누군데. 춥기야 사쿠마가 훨씬 추울 터였다. 이사라는 사쿠마를 걱정했다. 사쿠마의 옆에 있던 사람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은발의 수려한 미인이었다. 살짝 미간을 좁히고 무어라 말을 하는 그와 평온하게 대꾸하는 사쿠마 사이로 주황 머리카락의 소년이 둘의 어깨를 두르며 뛰어들었다. 친근함이 묻은 행동이었다. 무어라 말하며 웃은 그의 표정이 순간 변했다. 이사라와 닮고도 다른 녹색 눈동자가 짐승처럼 날카로워지는 모습에 이사라는 살짝 몸을 떨었다. 이름만 알던 사쿠마의 동료들이 바로 구분되었다. 잔소리쟁이라 사쿠마가 불평하던 세나가 은발의 소년이었고, 리더이자 작곡가라던 소년이 주황머리카락의 소년이었다.
사쿠마의 리더가 마이크를 쥐고 입을 열었다. 팬들을 고양시키는 말을 몇 마디 내뱉고 그 다음 세나에게 순서를 돌렸다가, 마지막은 사쿠마의 차례였다. 최선을 다할 거니까, 다들 잘 봐줘. 그리 말하며 사쿠마는 웃었지만, 말끝의 시선에 분명 이사라를 담았다. 이사라는 표정을 굳히고 무대를 응시했다. 곧 반주가 주변을 울리기 시작했다.
이사라는, 저의 시선이 몹시도 주관적이라는 것을 인정했지만, 사쿠마의 무대에서 눈을 땔 수가 없었다. 노래하고 춤추며 사람을 매혹시키는 사쿠마는 평소의 모습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아이돌의 모습이었다. 처음 보았던 여름의 무대보다 훌쩍 성장해 있었다. 조금은 격한 춤을 추면서 황홀하게 노래를 부른다. 저 혼자의 생각일지도 몰랐지만 이사라는 지금의 무대가 가장 완벽하게 보였다. 사쿠마는 무대 위에서도 종종 이사라를 응시했다. 홍옥의 눈동자가 말을 걸고 있었다. 보고 있어, 마 군? 이사라는 알았다. 지금 이것은 사쿠마의 진심이었다. 그는 이사라를 부르고 있었다. 같이 와 줘. 나랑 같은 길을 걸어 줘. 노래로 그는 애원하고 있었다. 함께 무대 위에 서 있는 세나와 츠키나가는 그것을 눈치챘지만 침묵해주었다. 이사라는 하염없이 사쿠마를 응시하고 또 응시했다. 어쩐지 그는 다시 한 번 울고싶었다. 이름을, 그의 이름을 부르고 싶었다.
아.
사쿠마가 넘어졌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무대의 열기에 녹아 고인 물 탓이었다. 조금 큰 소리가 났고, 주변이 웅성거렸다. 이사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시선이 하릴없이 떨렸다. 사쿠마는 망설이지 않고 일어섰다. 그리고 다시 춤을 추며 제 파트의 노래를 불렀다. 그의 동료들 모두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굴었고, 웅성거림은 조금씩 잦아들었다. 뒷사람의 원성에 이사라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여전히 안색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사라의 눈에는 보였다. 조금 창백한 사쿠마의 얼굴이며 작게 떨리는 손끝이. 티나지 않게 절고 있는 다리가. 이사라와 같은 것을 알아차린 것은 그의 두 동료들 뿐인 듯 보였다. 몇 번이고 시선을 사쿠마에게 던지며 신경쓰는 게 보였다. 이사라는 무대 위로 뛰어올라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쿠마는 꿋꿋하게 노래했다. 무대에서 내려갈 때까지 그는 버텼다. 그들의 차례가 끝나고 그는 안심하고 무대 뒤에서 그의 동료들에게 몸을 기댔다. 사쿠마를 받아주는 세나와 츠키나가의 뒷모습이 어슴푸레 보였다. 다음 아이돌의 등장에 묻혀 잘 보이지는 않았다. 이사라가 입술을 깨물었다. 걱정과 염려와 은근한 질투가 뒤섞인 제 자신이 추했다.
이사라는 곧장 사쿠마의 집으로 향했다. 1시간 가량을 기다리고 나서야 사쿠마는 집으로 돌아왔다. 시선이 마주치마자 그는 물었다.
“봤어, 마 군?”
“......응.”
모두 보았다. 사쿠마가 제법 열심히 아이돌 활동을 하는 것도. 꿋꿋하게 제 길을 걷는 것도.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그는 아이돌로 살아갈 자기 자신을 연마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끊임없이 이사라를 원하고 있는 것도, 보였다.
“나. 이제 아이돌이네, 마 군.”
“그렇더라.”
“열심히 하는 건 귀찮지만, 셋쨩이나 츳쨩을 따라가고 있어.”
“응.”
“지금의 유메노사키는, 조금...... 험하지만.”
사쿠마가 눈을 내리깔았다. 잠깐 망설이던 그는 말을 붙였다.
“나는 마 군이, 함께 있어주면 좋겠어.”
그건 사쿠마의 마지막 청이었다. 이미 한 번 이사라에게 거절당했던 사쿠마가 낸 용기였다. 이사라와 멀어지기 싫다는 손 내밈이었다. 이사라는 물끄러미 사쿠마를 바라보았다. 그토록 멀어보였던 거리는 어디 갔을까. 두 사람의 거리는 고작 두 발자국이었다. 사쿠마가 먼저 한 걸음 다가왔다. 이제 거리는 한 발자국. 이사라는 고개를 들었다. 사쿠마의 얼굴이 보였다. 곱디 고운 얼굴은 저번보다 조금 말라 있었다. 간절한 그 눈은 어찌나 예쁘게 빛나는지. 이사라는 설핏 웃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많은 고민은 가치를 잃고 녹아내려버렸다. 이번 일 년의 고민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곁에 있고 싶고, 함께 길을 걸으며 닮은 미래를 꿈꾸고 싶다는 욕심이 한없이 부풀었다. 가득, 또 한가득.
이사라가 한 발자국 다가섰다. 조심스럽게 뻗은 손끝이 다정하게 맞닿았다.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나, 한 번도 아이돌을 꿈꾼 적 없어.”
“응.”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무서워.”
“생각보다, 별 거 아니더라.”
사쿠마가 손을 올려 이사라의 등을 토닥이기 시작했다. 규칙적인 토닥임이 도닥도닥 이어졌다.
“그런데 말이야, 나 혼자 평범한 길을 걸으려는 것도 무섭더라고.”
이사라의 목소리에 미미한 웃음기가 섞였다.
“리츠가 없는 길을 혼자 걷는 건... 무섭잖아.”
손가락이 얽혔다. 단단히 서로를 맞잡았다. 온기가 닿자 힘이 빠졌다. 안심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같이 있어줄거지?”
“마 군만 괜찮다면 평생이라도.”
“그거 좋네...”
이사라가 고개를 들며 웃었다. 어쩔 수 없다는 것처럼, 어설프게 웃는 시선이 다정한 걸 알았다. 그래서 사쿠마도 웃었다. 두 사람 사이에 더 이상 거리는 없었다. 한없이 가까웠다. 이사라가 물끄러미 사쿠마의 눈을 보았다. 그 안에 담긴 애정을 읽었다.
“마 군은 고작 중학생이고, 나는 겨우 고등학생이잖아.”
사쿠마가 속삭였다.
“그러니까 아직은, 많이 고민하지 말자.”
뺨에 손이 닿았다. 이사라가 사쿠마의 손에 얼굴을 기댔다. 평소보다 높은 체온이 따뜻했다.
“응. 그럴게.”
이사라가 웃었다. 그 말이 맞는 것도 같았다. 소년이 눈을 감았다가, 떴다가, 작게 휘어졌다가. 마지막으로 다시 감겼다.
리츠가 마오에게 키스했다.
두 사람의 첫키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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