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타이부, 사막

2014. 3. 30. 11:55 from INAZUMA/NOVEL


사막의 밤은 차갑고 우아하며 눈부시다. 뜨거운 태양이 작렬하는 낮과는 달리 냉철한 달빛이 내려앉아 별이 빛나는 하늘이 수놓아진 사막의 밤에서 가장 호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단연 그곳의 왕이었다. 척박한 사막일지언정 살아가는 사람들은 있었고, 그들이 만들어낸 부족에서 족장으로 추양받는 사람 역시 있었다. 살기 힘든 장소이기 때문에 몇 배로 강하고 거친 사람들을 다스리는 족장, 마타타기 하야토는 무심한 표정으로 하늘을 보고 있었다.

사막 사람들 특유의 꽁꽁 싸맨 옷차림이 아니라 상의를 거의 풀어해친 헐렁한 옷차림을 하고는 옆에 놓은 포도를 한 알 따먹는 모습은 한가롭기 짝이 없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에 옆에 있던 사람이 표정이 도리어 찌푸려졌다.

"마타타기, 네가 할 일 덜 끝났다만." 
"내가 안해도 되는 것들이니까."
"그런게 어딨어."

마타타기와는 정 반대로 온 몸을 철저히 싸매고 있던 탓에 맨살이라고는 얼굴밖에 보이지 않은 모습의 이부키를 보며 마타타기가 코웃음쳤다. 족장인 저가 싫다는 것을 배짱좋게 거절할 사람따위 없었다. 이부키라면 모를까. 

한껏 불만스럽다는 듯 자신을 흘겨보는 이부키를 보며 마타타기가 가볍게 손짓했다. 자신을 부르는 그 모습에 이부키가 불만어린 표정을 지으면서도 얌전히 마타타기에게 다가왔다. 애초에 이 부족에서 마타타기의 명령을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이부키라면 더더욱 그랬다. 

"무슨 일인데?"
"좀 더 가까이 와 봐."

이미 충분히 가깝다만. 차마 내뱉지 못하는 불평을 삼키며 이부키가 조금 더 마타타기에게 다가갔다. 마타타기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부족의 신관인 텐마뿐이리라. 

마타타기가 그 자리에서 손을 뻗어도 충분히 이부키를 붙잡을 수 있을만큼 이부키가 가까이 오자 마타타기가 물끄러미 이부키를 바라보았다. 저 둥글둥글해보이지만 날카로운 눈매가 자신을 쏘아보면 언제나 긴장되어버리곤 했다. 그리고 저렇게 저 입매에 미소가 번진다면 저절로 한발자국 물러서고 싶어졌다. 






"큭?!"
"명령이다, 가만히 있어." 

번개처럼 움직여 멱살을 붙잡고 잡아당기는 마타타기의 힘에 속절없이 끌려오며 이부키가 가까스로 다리에 힘을 주고 버텼다. 당황스러움이 번져갔다. 이 빌어먹을 족장님이 또 무슨 장난질을 해대는 건지. 화를 내고 싶었지만 마타타기의 입에서 명령이라는 말이 튀어나온 이상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뼈에 박힌 세뇌는 여전히 잔재가 남아있었고 이부키는 찍어누르는 명령에 약했다. 아니, 굴복해버리는 것에 가까웠지만.

그런 이부키의 반응과 심리가 어떻든 마타타기는 제멋대로 행동했다. 칭칭 둘러싸매기는 해도 얇은 재질의 옷은 제법 허술했다. 순식간에 이부키의 상의를 찢어낸 마타타기는 불만스럽게 눈가를 좁혔다. 아직도 자잘한 잔상처가 남아있는데다가 크고작은 흉터도 그대로 남아있는 상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리고 사막 출신에서는 극히 드물게 나오는 흰 피부에 어울리지 않게 찍혀있는 낙인에 마타타기가 손을 얹었다. 불로 지져져 지워지지 않는 노예의 낙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은 번듯하게 족장인 마타타기의 호위무사 노릇을 하고 있는 이부키였음에도 이깟 낙인 하나에 비웃음받고 열등감따위를 느끼고 있었으니까.

내가 허락하지 않은 감정인데. 마타타기가 이부키의 오른 어깨에 박혀있는 노예문신을 손가락 끝으로 몇 번 눌렀다. 이부키는 이제 반쯤 해탈한 모습이었다. 마음대로 하라지. 딱 얼굴에 그렇게 써있는 게 우스워 키득키득 웃은 마타타기가 곧 위험하게 표정을 바꿨다.

먹이를 노리는 매의 표정, 이라고 생각하자마자 마타타기가 이부키의 낙인 위에 제 입술을 얹었다. 그리곤 엇, 하고 놀라기도 전에 마타타기가 이를 세웠다. 콱, 하고 낙인 위에 잇자국을 새겼다.


"야... 야! 뭐하는거야?!"
"시끄러, 가만히 있어."


자근자근 깨물다가 마지막에서야 한 번 핥고서 떨어지는 마타타기를 보며 이부키가 입을 떡 벌렸다. 너, 이, 어, 차마 단어론 나오지 않는 목메인 소리가 오 초쯤 이어졌을까, 소리가 날 정도로 빠르게 이부키가 뒷걸음쳤다. 창백하게 질렸다가 순식간에 시뻘게지는 얼굴이 볼만하다고 생각하며 마타타기가 킥킥 웃었다.

바깥으로 도망치는 이부키를 애꿋이 붙잡지 않으며 마타타기는 통에 담겨있언 포도주를 꺼내 쭉 들이켰다. 내일 아침이 되어도 저 잇자국은 틀림없이 이부키의 어깨에 박혀있으리라.

내일은 의복을 껴입지 말고 약식만 유지하라고 해볼까. 
마타타기가 심술궂게 웃었다. 폭군의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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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빛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