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 내가 잘못했어."
저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냉큼 튀어나오는 쌈박한 사과에 이부키는 할 말을 잃었다. 능청스러운 척 어깨를 으쓱하면서도 가증스럽게 미안하다는 척 시늉을 내며 표정을 누그러뜨리고 두 손을 모아 사과하는 꼴이 어이가 없었다. 저 모습만 봐서는 바로 3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잘못한 거 하나도 없다며 자신의 항의는 귓등으로도 들어먹지 않던 놈과 동일인이라고는 상상조차 못 할 지경이었다.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나온다는 말을 이부키는 실시간으로 뼈져리게 느끼고 있었다.
"마타타기가 사과했는데, 어떡할거야 이부키..?"
조금은 걱정어리면서도 차마 기대로 반짝거리는 시선을 전부 지우지 못하는 텐마를 보며 이부키는 머리라도 부여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저, 저 빌어먹을 마타타기. 틀림없이 계산이었다. 신은 대체 왜 이 녀석에게 나쁘지 않은 머리를 부여한 건지 이부키는 원망스러운 심정이었다.
어째서인지 오늘따라 마타타기가 끊임없이 시비를 걸었고, 무시하고 무시했다. 그건 이부키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자 노력이었다. 하지만 마타타기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지 점점 강도를 올려가며 괴롭히기 시작했고ㅡ 결국 폭발한 이부키가 마타타기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 모습을 하필 목격한 사람이 텐마. 정말 최악이었다. 차라리 다른 녀석이라면 입막음이라도 했고 변명이라도 했겠건만 충격어린 표정으로 입을 떡 벌리는 텐마의 모습을 보면 오해라고 해명하기도 뭐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스 일레븐 전원이 주장인 텐마에게 한 발자국 정도 물러서주는 면도 있기도 했고 말이다.
어쨌든 입을 벌렸다 닫았다 하며 차마 충격을 떨쳐내지 못하는 텐마의 모습에 이부키는 최대한 빨리 상황을 해명했고, 텐마는 마타타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으로 사과를 요구했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 이부키는 이 너무도 담백하게 흘러나온 사과에 도리어 주먹이라도 휘두르고 싶었다. 얄미워서 죽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걸 이렇게나 반짝거리는 시선으로 보는 주장 앞에서는 드러낼 수도 없는 노릇. 결국은 분노를 삼키며 고개를 끄덕이고 사과를 받아주는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마타타기. 마지막까지 외치지 못한 욕설을 꾹꾹 삼키며 이부키가 등돌려 쿵쿵 걸었다. 발자국 하나하나에 분노를 싣는다는 심정으로 콱콱.
* * *
"....마타타기도, 이부키를 너무 괴롭히는 건 그만 둬."
이부키의, 여전히 화가 났다는 것을 명백히 드러내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텐마가 마타타기에게 시선을 돌리며 그리 말했다. 멋쩍게 웃는 얼굴과 어색한 눈동자가 숨김없이 곤란함을 표현하고 있어서 마타타기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텐마가 편을 들어 주는 것에 냉큼 승차하기는 했지만 내리는 건 쉽지 않을 모양이었다.
하지만 재미있는걸, 누르는 대로 반응이 오는 녀석이니까.
차마 버럭버럭 화를 내지는 못한다는 듯 얼굴이 빨게져서는 두 주먹만 부들부들 떨다가 고개를 획 돌리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특히 원망스럽다는 듯 치켜올라간 눈초리와 그 안에 박힌 눈동자가 곧게 저를 비추는 모습이 썩 마음에 들었다.
뭐, 주장한테만 안 들키면 되는 거니까.
여유만만하게 생각하며 마타타기가 씩 웃었다. 이부키가 보았더라면 질색을 했을, 장난을 꾸미는 악동의 미소였다.